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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 Vol.3

트렌드&전망
글 | 한양대학교 생체공학과 임창환 교수

공상과학(SF) 영화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매트릭스>, <아바타>, <써로게이트> 등의 영화에 등장하는 ‘뇌와 컴퓨터를 연결하는 기술’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들은 생각만으로 가상현실에 접속하거나 아바타를 조종한다. 뇌공학자들은 이러한 영화 속의 상상을 현실로 만들기 시작했다. 사람의 생각을 읽어 내는 기술인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rain-Computer Interface, 이하 BCI)는 언제쯤 우리 일상의 일부가 될 수 있을까?

BCI의 역사 및 개념

BCI라는 개념은 생각보다 오래전인 40여 년 전에 처음으로 제안됐다. 1973년 미국 UCLA(University California Los Angeles)의 자퀴스 비달 교수는 뇌파(뇌에서 발생하는 신경 신호)를 이용해 뇌의 활동을 읽어 내면 사지가 마비된 환자들이나 유사 식물인간 환자들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아이디어를 냈고, 이런 개념을 ‘뇌-컴퓨터 인터페이스’라고 명명했다. 물론 당시의 조악한 컴퓨터 기술로는 실시간으로 뇌파를 분석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비달 교수는 4년 뒤인 1977년, PC가 등장하자 드디어 실시간으로 뇌파를 분석하는 방법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며 본격적인 BCI 기술의 서막을 알렸다.

BCI는 뇌파 이외에도 수술을 통해 뇌에 직접 전극(미세전극배열•Microelectrode Array)을 삽입해 신경세포의 활동전위를 읽어내는 방식을 사용할 수도 있으나, 일반인에 대한 BCI 기술의 적용 가능성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앞서 언급한대로 BCI 기술은 기본적으로 사지가 마비되어 외부 기기를 조작할 수 없거나 언어 능력이 상실되어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환자들의 새로운 의사 전달 채널로 개발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런 BCI 기술의 역사적 배경은 초기 연구자들이 내린 BCI의 정의에서도 잘 나타나는데, 2002년 미국 워즈워스센터의 토마스 월포 교수는 ‘BCI는 신경신호를 해독하여 외부 기기를 조작하거나 외부와의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이라고 정의했다. 이러한 정의는 적어도 비달 교수 이후 30여 년간은 별다른 이견 없이 받아들여졌다.

BCI의 전통적인 개념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 것은 불과 5년 내외의 일이다. 이 무렵 BCI는 인접 학계 연구자들로부터의 커다란 비판에 직면했다. BCI 분야가 세계적인 관심을 끌기 시작하면서 500여 개 이상의 연구그룹이 BCI에 뛰어들었지만 BCI 기술을 실질적으로 필요로 하는 환자의 수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BCI 기술의 주요 적용 대상으로 언급되는 루게릭병 환자는 세계적으로도 30만 명 내외에 불과하다. 더구나 루게릭병 환자라고 해서 모두가 BCI 기술을 필요로 하는 수준의 심각한 증상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물론 이런 희귀 난치성 뇌질환 환자를 위한 연구는 계속돼야 하겠지만 BCI 연구 커뮤니티 내에서조차 적용 대상에 비해 너무나 많은 그룹이 연구를 할 필요가 있느냐는 비판이 일기도 한 것이다.

이에 따라 연구자들은 2013년 개최된 국제 BCI 미팅을 기점으로 BCI의 전통적인 정의를 수정하기로 했다. 기존에는 전통적인 BCI의 정의에 어긋난다고 하여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뇌의 상태를 파악하는 기술을 수동형 BCI(Passive BCI)라는 이름으로 BCI의 범주에 포함하기로 한 것이다. 수동형 BCI는 외부 기기를 조작하거나 외부와 의사소통하기 위한 기술이 아니라 개인의 뇌 상태(집중, 감정, 심신안정도 등)를 읽어서 엔터테인먼트나 교육에 적용하기 위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BCI 기술을 통칭한다.

웨어러블 뇌파 측정과 수동형 BCI

많은 학자들은 기계가 인간의 감정과 뇌의 상태를 인식하는 기술이 완성되면 다양한 응용 분야에 적용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한다. 인간과 감정을 교류할 수 있는 컴퓨터나 로봇은 자폐증을 가진 아동이나 커뮤니케이션 불안장애를 가진 성인의 재택 치료에 활용될 수 있다. 또한, 가정용 로봇이 주인의 감정을 인식하여 기분 전환용 음악을 연주하거나 조명과 실내 온도를 조절해 줄 수도 있다. 기계가 사람의 뇌 상태를 알아낼 수 있게 되면 노인 치매 환자들의 정신적 부담감을 측정해서 자동으로 난이도나 컨텐츠를 바꿔주는 스마트한 인지재활 장치나 수험생들의 집중도 변화를 고려해 학습 전략을 제안하는 학습 보조 시스템도 개발할 수 있다. 이미 일본 등 기술 선진국에서는 사용자의 마음을 반영하는 가전기기를 개발하기 위해 뇌공학 분야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하지만 단지 개인의 감정을 읽기 위해 선이 주렁주렁 달린 모자를 쓰거나 큰 기계에 들어가야 한다면 누구도 이런 기계를 쓰지 않을 것이다. 최근에는 반도체 기술의 발전으로 하나의 칩에 뇌파 신호의 증폭부터 디지털 변환, 잡음 제거 등의 기능이 포함된 뇌파 전용 ‘시스템 온 칩(Systen on Chip•SoC)’이 개발되어 헤드밴드나 헤드셋 타입의 보급형 포터블 뇌파 기기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실제로 IT 분야의 최대 화두인 ‘웨어러블’이라는 키워드와 맞물려 정신 건강 모니터링이나 자가 뇌 조절 기능이 포함된 ‘웨어러블’ 뇌파 측정 기기들이 해마다 7~8종씩 출시되고 있다. 이런 기기들은 심신이 안정된 상태에서는 전두엽(이마 부위)에서 측정된 뇌파 중 알파파(8~12Hz)나 세타파(4~7Hz)의 비율이 증가하고, 스트레스를 받는 환경에서는 베타파(13~30Hz)의 비율이 증가하는 등의 신경과학적 현상에 기초하고 있다. 이 외에도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게 되면 전두엽 알파파의 좌-우 비대칭성이 증가하는 현상이나 시각적 자극에 대한 선호도 변화에 따라 후두엽과 측두엽 알파파가 증가하는 현상 등이 활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수많은 웨어러블 뇌파 측정 기기들의 출시와 수동형 BCI 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일반인들은 아직 일상생활에서 이 기술의 발전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새롭게 출시된 웨어러블 뇌파 측정기기 중 대다수가 1~2년 이내에 자취를 감추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수동형 BCI 기술의 과제

뇌파로부터 개인 감정과 뇌 상태를 읽어내는 기술의 대중화를 가로 막고 있는 가장 큰 장애물은 뇌파 신호의 개인차다. 뇌파 지표 중에서 가장 널리 활용되는 지표 중 하나는 전두엽 알파 비대칭성 지표다. 측정 대상이 부정적인 감정을 가질 때는 좌반구 알파 활동이 증가하고 긍정적인 감정을 가질 때는 우반구 알파 활동이 증가한다는 사실은 많은 실험을 통해 잘 알려져 있다. 수많은 학술 논문에서 이런 현상을 보고해 왔지만 실제로 실험을 해 보면 실험 대상의 약 80%에서만 이러한 경향이 관찰된다. 이는 보통 ‘통계의 오류’로 불리는 현상인데, 현재 과학계에서 사용하는 통계적 방법에서는 20% 정도의 사람들이 변화가 없거나 반대 경향을 보이더라도 충분히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경향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같은 큰 개인차는 뇌파를 이용해 개인별로 뇌 상태를 측정하는 방식의 신뢰도를 낮추는 중요한 원인이 된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이유 때문에 대기업들이 선뜻 휴대용 뇌파 측정기를 이용한 응용 분야 시장에 뛰어들지 못한다는 점이다. 만약 대기업이 출시한 휴대용 뇌파 측정기를 80%의 사용자만 활용할 수 있다면 곳곳에서 환불 요청이 빗발치고 소비자 단체는 제품 판매 중단을 요구하며 기업의 신뢰도가 추락할 것임은 자명하다. 측정된 뇌파 신호의 개인차를 해결하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개인차가 없거나, 있더라도 매우 적은 새로운 뇌파 지표를 개발하는 것이지만 수많은 연구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이런 뇌파 지표는 보고된 적이 없다. 또 다른 방법은 개인 맞춤형 뇌파 지표를 찾는 방식으로, 착용한 뇌파 측정기기가 자동으로 개인에게 가장 적합한 뇌파 지표를 찾아 주는 방법이다. 이상적으로는 웨어러블 측정기기를 일상생활 중에 착용하고 다니면서 사용자가 특정 활동을 할 때 어떤 뇌파가 발생하는지를 스스로 학습해서 개인 맞춤형 뇌파 지표를 찾아내는 라이프로깅(Life Logging)전략 또는 세션을 통한 반복 학습(Learning Over Sessions)전략이 있지만, 현재 기술 수준으로는 이른 시일 내에 달성 여부가 불투명하다.

현실적인 대안으로 뇌파를 이용한 뇌 상태 해독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뇌파 이외의 다양한 생체신호를 함께 사용하려는 시도도 있다. 뇌파뿐만 아니라 얼굴 주위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생체신호(맥파, 체온, 피부전도도, 안구전도, 근전도 등)를 동시에 측정할 수 있는 웨어러블 생체신호 측정기기를 개발하면 개인의 뇌 상태와 감정 상태를 보다 정확하게 추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인간의 체온은 36.5℃로 알려져 있지만 감정 상태에 따라 1℃ 정도 범위 내에서 역동적으로 변한다. 피부전도도는 땀에 의해 달라지는데 긴장된 상태에서 땀이 나면 피부 전기전도도가 증가한다. 이러한 보조 데이터를 함께 활용할 수 있다면 뇌파만 사용할 때보다 더 정확하게 사용자의 감정과 뇌 상태를 알아내는 것이 가능하다.

BCI 기술의 응용

이와 같은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기술의 발전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사용자들이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웨어러블 뇌파 측정기기를 사용하게 만들 ‘킬러 BCI 어플리케이션’을 개발하는 일이 선행돼야 한다. 미관상 아름답지 않고 착용 시 거추장스러운 웨어러블 뇌파 기기를 일상생활 중에 지속적으로 착용하고 다닐 가능성은 크지 않다.

수동형 BCI 기술의 성공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응용 분야는 정신건강 모니터링(Mental Healthcare), 교육, 엔터테인먼트 순으로 보인다. 실제로 2014년에 출시된 캐나다 회사 인터락손(Interaxon)의 뮤즈(Muse)라는 제품은 아침에 하루 3분 헤드밴드를 착용하고 명상을 하면 그 때 측정된 뇌파 신호를 스마트기기에 저장하여 매일 명상 효과와 정신건강 상태 변화를 모니터링 할 수 있게 해준다.

실제로 캐나다와 미국에서 3만 대 이상의 뮤즈를 판매한 이 회사는 앞으로 다수의 사용자에게서 측정한 뇌파 데이터의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서 개인별 정신 건강 상태를 진단하고 정신 건강을 증진하기 위한 솔루션을 제공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 교육 분야에서도 집중도, 심신안정도, 정신적인 업무량 등과 학업성취도 간의 상관관계 분석을 통해 학습전략 수립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고,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는 흥분도나 집중도를 게임 캐릭터의 능력치와 연동하여 새로운 게임 입력 장치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BCI 기술 분야에서 최근 국내 학자들의 활약은 주목할 만하다. BCI 분야의 유일한 국제 학술지인 <Brain-Computer Interfaces>의 편집위원 38명 중 한국 연구자들이 네 명이나 포함돼 있다. 국내 BCI 연구가 미국, 독일 등보다 20~30 년 늦게 시작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비약적인 발전이 아닐 수 없다. 자리 잡아 가고 있는 국내 연구 기반에 산업계의 투자와 우수한 ICT 기술이 더해진다면 미래 BCI 산업 분야를 우리나라가 주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타인의 감정을 추론하는 것은 인간이 가진 고유한 능력 중 하나다. 우리는 타인의 표정, 몸짓, 시선, 목소리 등을 통해 타인의 불안감, 만족도, 선호도, 이해도와 같은 다양한 감정을 추론하며 이는 원만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데 있어 필수적인 능력이다. 언젠가 인간 감정을 가진 기계가 개발된다면 기계가 우리의 뇌로부터 감정을 읽고 교감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임창환 님은…

서울대학교 전기공학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미국 미네소타주립대 의공학과 연구원과 연세대학교 의공학부 조교수를 거쳐 2011년부터 한양대학교 공과대학 생체공학과 부교수로 재직중이다. 뇌공학 분야에서 현재까지 150여 편의 국제 저명학술지 논문을 발표했으며, 대한뇌기능매핑학회, 한국계산뇌과학회, 대한의용생체공학회의 이사를 역임하고 있다. 또한, 과학 대중화를 위해 뇌과학과 관련된 강좌를 개최하고 칼럼을 집필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뇌공학의 현재와 미래를 다룬 책 『뇌를 바꾼 공학, 공학을 바꾼 뇌』가 있다.

  • 현현주2015.11.03
    우리나라가 BCI분야에서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 앞 서 나가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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